2026년, 누구나 솔루션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Claude·Codex 같은 AI 도구의 보급으로 코딩 역량이 없어도 서비스를 뚝딱 만들어낼 수 있고, 해외 일부 VC는 인수 대상 SaaS 기업의 기술을 직접 카피해본 뒤 실체가 디지털 솔루션뿐이라면 인수를 포기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기술력만으로 경쟁 우위를 차지하던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이동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의 해자는 서비스를 구현해내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로도 복제할 수 없는 나머지 20-30%, 즉 현장에서 쌓인 경험과 암묵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축적된 비정형 데이터가 될 것입니다.
기술 평등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 왜 위기인가
SaaS 서비스가 각광받던 시대에는 특정 기능을 구현하는 것 자체가 진입 장벽이었습니다. 배차 자동화, 실시간 관제, 전자 검표 같은 기능을 만들려면 상당한 개발 역량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AI 코딩 도구가 빠르게 확산된 2025-2026년을 기점으로 이 장벽은 급격히 낮아졌습니다.
결과는 단순합니다. 어떤 서비스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이 더 이상 차별점이 되지 못합니다. 모두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세상에서 기술만 앞세우는 사업자는 빠르게 범용재(commodity)로 전락합니다. 이는 이동·수송 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실제로 해외 VC 생태계에서는 이미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M&A를 주로 해온 일부 투자사는 인수 대상 SaaS 기업의 기술을 AI로 빠르게 카피해보는 실험을 거친 뒤, 솔루션 이외에 실질적인 자산이 없다고 판단되면 협상 테이블을 떠나는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가치는 희소할 때 높습니다. 기술이 평등해진 세상에서 기업의 가치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기술이 상향 평준화될수록 암묵지가 해자가 되는 이유
경영학에서 '해자(moat)'는 경쟁자가 쉽게 넘어오지 못하는 구조적 우위를 뜻합니다. 기술이 해자가 되던 시대에는 특허, 알고리즘, 고도의 엔지니어링 역량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기술의 민주화가 진행될수록 해자의 무게 중심은 이동합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 흔히 암묵지(tacit knowledge)라고 부르는 이 무형의 자산이 새로운 해자가 됩니다. 특정 행사 유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졌을 때 어떤 판단을 내리는가, 고객사의 니즈가 명확하게 표현되지 않았을 때 어떻게 설계하는가, 수십 대의 차량이 동시에 움직이는 상황에서 어떤 우선순위로 관제하는가. 이런 것들은 매뉴얼에 담기 어렵고, AI에게 학습시키기도 쉽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직접 반복해야만 체화됩니다.
그리고 이 암묵지는 또 다른 자산과 맞물립니다. 바로 데이터입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데이터는 깔끔하게 정제된 정형 데이터가 아닙니다. 운영 현장에서 발생하는 비정형 데이터, 즉 어떤 상황에서 배차가 지연됐고, 어떤 동선에서 병목이 생겼으며, 어떤 프로토콜이 실제로 작동했는지에 관한 날것의 기록입니다. 이것이 AX 시대에 AI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연료가 됩니다.
그라운드케이가 이동 산업에서 쌓아온 것들
그라운드케이는 T-RiseUp PMS와 T-RiseUp TMS라는 SaaS 솔루션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가진 자산의 전부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솔루션들은 10년 가까이 직접 운영하며 쌓은 현장 경험이 코드로 구현된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정상회의급 의전 수송,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행사, K-POP 공연 셔틀, 국제 스포츠 대회, 기업 셔틀까지 이동 산업의 거의 모든 유형을 직접 운영해왔습니다. 2026년 한 해만 봐도, 글로벌 e스포츠 대회 MSI 2026에서 31건 배차·4개국 출발지를 단일 화면으로 관제했고, X THE LEAGUE 어워즈에서는 9개국 셀러단 40인의 동선을 3종 차종·28개 경유지로 처리했습니다. 부산원아시아페스티벌에서는 3개 노선·614명 이상의 셔틀을 운영했고, UCI MTB World Series에서는 해발 1,458m 산악 거점에서 다국어 예약과 글로벌 결제를 통합했습니다.
이 각각의 운영은 단순히 실적 숫자로만 남지 않습니다. 어떤 동선 설계가 실제로 작동했는지, 어떤 변수가 어느 시점에 터지는지, 어떤 관제 판단이 지연을 막았는지에 관한 비정형 데이터로 축적됩니다. 디지털 전환을 이미 달성했기 때문에 이 데이터는 시스템 안에 남고, AI가 다음 판단을 도울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SaaS 솔루션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위치가 바뀌는 것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명확히 짚겠습니다. 기술이 평등해지는 시대가 온다는 말이 SaaS 솔루션이 쓸모없어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도구로서의 기술은 여전히 필수입니다. 다만 기술의 역할이 바뀝니다.
기술이 해자이던 시대에는 기술 자체가 사업의 본체였습니다. 앞으로는 기술이 암묵지와 비정형 데이터를 구조화하고 활용하는 수단이 됩니다. 즉, 기술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아닙니다. 현장 경험 없이 기술만 갖춘 사업자와, 현장 경험 위에 기술을 올린 사업자 사이의 격차는 기술이 평등해질수록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라운드케이가 솔루션을 앞세우지 않고 운영 경험을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시스템은 운영에서 나왔고, 운영은 데이터를 낳았으며, 데이터는 AI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이 됩니다. 이 순서를 뒤집으면 기술만 남고 내용이 없어집니다.
이동 산업에서 AX가 의미 있으려면 무엇이 먼저여야 하는가
AX(AI Transformation)를 이야기하는 곳은 많습니다. 하지만 AI가 실제로 판단을 개선하고 운영 효율을 높이려면 먼저 세 가지가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첫째, 디지털 전환(DX)이 선행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직 전화로 배차하고 엑셀로 정산하는 운영 구조에서는 AI가 학습할 데이터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이전 인사이트에서 다룬 것처럼, DX는 AX의 전제이지 선택이 아닙니다.
둘째, 현장 경험이 데이터로 전환되어 있어야 합니다. 운영 경험이 시스템 밖에만 있다면, 즉 담당자 개인의 기억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비정형 데이터가 아니라 사라질 정보입니다. DX를 통해 현장 경험이 시스템 안에 기록될 때 비로소 AI가 다룰 수 있는 자산이 됩니다.
셋째,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AI는 패턴을 찾지만, 어떤 패턴이 의미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이동 산업에서 어떤 변수가 중요하고 어떤 판단이 현장을 바꾸는지를 아는 사람이 AI를 설계할 때, 그렇지 않을 때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이 세 가지는 단기간에 복제되지 않습니다. 기술은 복제할 수 있어도, 현장에서 쌓인 10년의 운영과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데이터는 복제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기술이 평등해진 시대에 이동 산업의 진짜 해자입니다.